금성대군 완전 해설, 단종을 마지막까지 지킨 왕자의 삶과 죽음

상식정보

금성대군과 단종의 관계

2026년 2월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이준혁이 강렬한 눈빛으로 연기한 인물, 바로 금성대군(錦城大君)입니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던 왕자,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그는 형 수양대군의 쿠데타에 맞서 끝까지 조카를 지키려 했고, 결국 유배지 순흥에서 단종 복위를 꾀하다 처형당했습니다. 역사책에는 짧은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한 인간의 치열한 충의(忠義)와 비극적 운명이 가득합니다. 금성대군이 누구인지, 단종과는 어떤 관계였는지, 순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준혁이 연기한 그의 모습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풀어드립니다.

금성대군은 누구인가 — 출생과 성장

금성대군의 본명은 이유(李瑜)입니다. 1426년(세종 8년) 조선의 성군(聖君)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째 아들이에요. 형제를 보면, 첫째 형은 후에 5대 왕이 되는 문종(이향), 둘째 형이 바로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이유), 그리고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에 이어 금성대군이 태어났습니다.

1433년(세종 15년) 금성대군에 봉해졌고, 1437년(세종 19년) 열두 살의 나이에 참찬 최사강의 딸과 혼인했습니다. 같은 해 세종의 명으로 태조 이성계의 여덟째 아들 의안대군의 봉사손(제사를 잇는 양자)으로 출계(出系)하여, 이후 의안대군의 사당을 자신의 사저에 세웠어요. 어린 시절 금성대군은 세종 치세의 문화적 전성기를 누리며 왕족으로서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형 수양대군이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급변하게 됩니다.

가계도로 보는 금성대군과 단종의 관계

금성대군과 단종의 관계
금성대군과 단종의 관계

금성대군과 단종의 관계를 가계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핵심은 금성대군은 단종의 친삼촌이라는 점이에요.

  • 세종대왕 (4대 왕) — 소헌왕후 심씨와의 사이에 8남 2녀
  • 문종 (5대 왕, 이향) — 세종의 맏아들. 1450년 즉위해 2년 만에 승하
  • 단종 (6대 왕, 이홍위) — 문종의 외아들. 1452년 열두 살에 즉위
  • 수양대군 (후의 세조, 이유) — 세종의 둘째 아들. 단종의 친삼촌이자 금성대군의 친형
  • 금성대군 (이유) — 세종의 여섯째 아들. 단종의 친삼촌이자 수양대군의 친동생

즉 금성대군 입장에서 수양대군은 친형이고, 단종은 조카입니다. 친형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고, 그 형에게 끝까지 맞서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복잡한 가족 관계 속에서 금성대군의 충의는 더욱 비극적인 빛을 발합니다.

수양대군의 쿠데타와 금성대군의 선택

1452년 문종이 승하하고 열두 살 단종이 즉위하자, 세종의 아들들은 모두 사정전에 불려가 어린 조카를 보필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금성대군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런데 불과 1년 뒤인 1453년, 수양대군이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서 수양대군은 어린 단종의 보필 대신이었던 김종서(金宗瑞)와 황보인(皇甫仁) 등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금성대군은 형의 행위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조카를 보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정전에서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였어요. 이 때문에 금성대군은 수양대군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압박해 왕위를 양보받고 스스로 세조로 즉위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어요. 금성대군은 세조에 의해 경기도 광주 → 전라도 삭녕 → 경상도 순흥 순서로 거처를 옮겨가며 점점 더 멀고 외진 곳으로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사육신과 함께한 복위 운동 — 1차 거사의 실패

세조가 즉위한 이듬해인 1456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사육신(死六臣)이 중심이 된 단종 복위 운동이 시작됩니다. 이 계획에 금성대군도 연루되었어요. 거사는 세조가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를 베푸는 날 거사하기로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사육신은 모두 체포되어 참형을 당했고, 금성대군은 복위 운동과의 연루 혐의로 경상도 순흥으로 더욱 멀리 유배됩니다.

이 무렵 단종은 이미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가 있는 상황이었어요. 삼촌과 조카, 둘 다 유배지에 갇힌 채 서로를 그리워하는 처지가 된 것이죠.

순흥 복위 의거 — 마지막 불꽃

1457년(세조 3년), 경상도 순흥에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집니다. 순흥부사(順興府使) 이보흠(李甫欽)과 뜻을 같이하고, 순흥 지역의 재향품관(재지 양반), 군사, 향리 등 이른바 영남 사인들을 규합했어요. 격문(檄文)을 지어 사방으로 비밀리에 보내 의로운 선비와 협객들을 순흥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누군가의 밀고(密告)로 세조에게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1457년 6월, 안동부사 한명진의 지휘 아래 관군이 순흥을 급습했어요. 순흥 고을은 순식간에 불길과 피바다를 이루며 폐허가 됐습니다. 이 사건을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 부릅니다. 금성대군은 안동으로 압송되어 옥에 갇혔고, 며칠 뒤 교살(絞殺, 목 졸라 죽임)당했습니다. 향년 32세였어요.

그리고 같은 해 10월, 조카 단종도 영월 청령포에서 사사(賜死)됩니다. 삼촌과 조카는 같은 해에, 서로 다른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순흥, 220년간 지도에서 사라지다

금성대군 순흥 복위 의거의 비극은 대군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조는 복위 운동의 본거지가 된 순흥을 폐부(廢府)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내렸어요. 순흥도호부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어 지도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순흥이라는 행정구역이 회복된 것은 무려 220여 년이 지난 숙종 대(1683년)에 이르러서였어요. 한 대군의 복위 운동이 지역 전체를 두 세기 넘게 지도에서 지워버린 셈입니다.

지금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는 금성대군 신단(神壇)이 남아 있어, 매년 후손과 지역민들이 금성대군의 충절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신단은 단종 복위 운동의 성지로 알려져 있어요.

단종과 금성대군, 두 사람의 차이와 공통점

단종을 마지막까지 지킨 왕자의 삶과 죽음
단종을 마지막까지 지킨 왕자의 삶과 죽음

역사에서 단종과 금성대군은 자주 함께 언급되지만, 두 사람의 처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구분 단종 금성대군
신분 조선 6대 왕 (조카) 세종의 여섯째 아들 (삼촌)
세조와의 관계 왕위를 빼앗긴 조카 왕위 찬탈에 맞선 친동생
유배지 강원도 영월 청령포 경상도 순흥
사망 1457년 사사(賜死), 향년 17세 1457년 교살, 향년 32세
복권 숙종 대 단종으로 복위 숙종 대 관작 복구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같은 해(1457년) 죽임을 당했다는 것, 그리고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명예를 되찾았다는 것입니다. 단종은 1698년(숙종 24년) 왕으로 복위되었고, 금성대군도 이때 관작이 복구되어 충의로운 인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이준혁의 금성대군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2026년 2월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는 1457년 영월 청령포를 배경으로,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박지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배우 이준혁이 금성대군으로 특별 출연해 뜨거운 화제를 모았습니다.

장항준 감독은 캐스팅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금성대군은 세종대왕의 아들들 중 거의 마지막까지 단종을 지키려 한 유일한 대군이다. 실현되지 못할 정의를 꿈꾸는, 역사의 물줄기를 다시 정방향으로 세우려는 올곧은 왕족의 기품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다.” 이준혁은 갑옷을 입고 강렬한 결의를 담은 눈빛으로 금성대군을 표현했고, 단종 복위를 도모하는 극 중 흐름에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이준혁이 이미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로 큰 인기를 끌던 시점에 금성대군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스크린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 캐스팅은 영화와 역사 양쪽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끌어올렸습니다.

금성대군 묘와 기억의 장소

금성대군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합니다. 역사적 인물이지만 오랫동안 역적으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추모가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숙종 대 관작이 복구된 이후 묘역이 정비됐어요. 유배지였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에는 앞서 언급한 금성대군 신단이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세워져 지금도 제사를 지냅니다.

또한 순흥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는데, 소수서원 인근에 금성대군 신단이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영주시는 금성대군 순흥 복위 의거를 지역의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여기며, 매년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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